공공기관장 사퇴 주장, 명분 없는 이유



"이전 정권 정치색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이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취임식에서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정치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존 공공기관 장에게 물러나라는 유 장관의 주장은 "저급한 정치적 압력에 불과하다"고 비판 받아도 딱히 할 말이 없다.

최근 불거진 공공기관장 사퇴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적어도 법과 원칙의 잣대에서는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기관장의 임기는 지난 2006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로 보장돼 있다. 이들이 의무와 책임, 직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게을리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해임시킬 수 없다는 내용에 당시 여,야는 뜻을 함께 했다. 과거 정략적인 이유로 기관장이 자주 교체되는 바람에 직무의 독립성, 공정성, 전문성 등이 훼손됐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색깔론, 낙하산 인사 등을 이유로 임기가 채 끝나지 않은 이들에게 사퇴 압력을 넣는 행동은 합의된 원칙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것이자, 자기 발목을 잡는 셈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해도, 명분을 찾을 수 없는 이유이다.

문제가 있다면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접근하는 편이 되레 바람직하다. 기관장의 능력에 흠결이 있다면 감사원 등 외부 조사기관의 조사를 통해 객관적인 자료로 보여주면 된다. 그런 뒤 "잘했다. 잘못했다" 판단을 국민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정권 말기에 기관장을 임명, 새 정권 국정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임기제 관련 제도를 조금씩 손보는 것이 옳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막무가내로 다그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진정 국민의 공감을 얻고 싶다면, 천천히, 그리고 여유를 갖고 성숙된 '운용(運用)의 묘(妙)'를 보여줘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과반이 넘는 지지를 보낸 것은 법과 절차, 원칙을 무시해도 좋다는 초법적 권한을 부여한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약한 바람에도 쉽게 쓰러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정부는 다시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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