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있되 보지 못하고, 귀는 있되 듣지 못하고, 머리는 있되 쓸 줄 모른다. 입은 있되 혼잣말만 중얼거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과정을 본 국민들의 생각이다. 그야말로 "꽉 막혔다"는 것이다. 뿔이 난 시민들은 두 달이 넘게 촛불을 손에 들고 거리로 나와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고 있다. 진보진영에선 이를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라고 평했다. 다른 쪽에선 '대의민주주의 위기설을 얘기한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맞다.
이른바 '거리정치'가 나타나게 된 1차적인 책임은 국회에 있다. 국회가 민의를 수렴해 정부를 견제하는 구실을 제대로 못한 탓이 크다. 이 때문에 시민의 가슴 속에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 쌓여갔다. 대의제에 대한 실망이 쌓이다보니 직접 얘기해야겠다는 욕구가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엔 현 대의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당이 있다. 만약 정당정치가 체계적으로 잘 작동했더라면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오는 일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거리정치'는 대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나타났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등도 과거 억압적인 정부 하에서 사실상 대의정치 자체가 유명무실해지자 이에 대항, 민주화를 꾀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에서 비롯됐다. 촛불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지만, 국회가 침묵하자 대신 시민이 직접 나선 것이다. 이처럼 '거리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와 불합리를 지적, 정치권이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이것이 촛불이 지닌 상징성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대의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재가 돼야지 대체제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거리정치'로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데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매번 특정 안건이 있을 때마다 국민투표에 부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수많은 나라가 대의민주제를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위기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해법은 원인에서 찾는 게 최선이다. 이를 위해선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대표들의 의식과 역할이 변해야 한다. 정당이 변해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이 바뀌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따르는 게 아니라 독립된 대의체로서 그 역할을 성실히 해내야 한다. 친박연대 의원 등을 흡수하면서 한나라당은 사실상 180석이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 '쪽수'로 대통령 감싸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면, 또 다시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올 것이다. 대통령은 5년이면 끝나지만, 국회의원은 4년 뒤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제1 야당인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촛불집회 현장에 나간 의원들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잘한 것도 없다"는 게 민주당이 직면한 냉엄한 현실이다. 조건 탓만 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도 민의를 수렴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민심은 따라오게 마련이다. 국회는 스스로 민의의 광장임을 보여줘야 한다. 이는 촛불집회가 남긴 엄중한 교훈이다.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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